2010년 11월 25일 목요일

연평도를 바라보며.

북한이 또 말썽이다.

정말 또 말썽이다.

북한의 공격으로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했다.
연평도는 불타고 있다.

왜 공격했을까.
중국의 말대로 정말 '성난 짐승(?)' 일까.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성나게 했을까.
매년 해오던 국군의 자위훈련이 못마땅했던가.
아니면 지배체제 승계를 위한 '그림'이 필요했던가.

자신들의 왕권(?) 강화를 위해
사람들 목숨을 파리목숨으로 여기는
김(金) 정권에 대한 분노와 적의 그리고 실망감이 크다.

물론, 애당초
기대도 없었지만 말이다.

中, ‘성난 짐승’ 북한의 조종사아니다

[연합]
입력 2010.11.25 16:18

'中외교, 북한에 특효약 없다' <中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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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북한이라는 '성난 짐승'을 조종하는 전문가가 아니며 중국 외교도 북한에 대해 특효약이 없다는 표현이 중국 신문에서 나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25일 '미항모, 기회틈타 서해로 향해'라는 제목의 1면 톱 기사에서 북한을 '제멋대로 행동하는 나라', '예측이 어려운 나라'로 보고 있는 서방이 중국에 북한을 억제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이같은 표현으로 간접적으로 답변을 제시했다.

신문은 이례적으로 북한을 '성난 짐승'이라고 표현하고 중국은 확실히 사자춤을 출때 이를 리드하는 춤꾼이 아니다는 표현으로 중국이 북한을 억제하고 리드할 영향력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신문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중국 사회의 여론이 갈라져 있으며 중국 외교도 북한에 대해 특효약이 없다고 말했지만 더이상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장주첸은 이어 미 항모의 서해진입은 한국의 국가안보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동북아 전략을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하고 이는 장기적으로 동북아의 화근이 될 것이며 이를 둘러싸고 많은 마찰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은 지금까지 벼랑끝 전술로 국제사회에서 이득을 챙긴 경험이 많다고 갈파하고 북한은 국내 정치, 경제체제상 생존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양보와 원조를 얻기위한 수단으로 벼랑끝 전술을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그치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허무함,,,,



죽음을 앞둔 남자는 컴퓨터 폴더에 담긴 파일을 삭제하는 한 번의 클릭으로 직장생활이 끝나는 것을 보며 생의 허무를 거듭 곱씹는다.

그 허무는 "너를 사랑했다" 고 말하는 옛 여자 동창의 고백이 돈을 떼어먹기 위한 거짓 고백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속아주는 것과 같다.

-K-21 장갑차. '물에 뜨는 장갑차' 수륙(水陸) 양용 장갑차는 지난 7월 호수로 들어갔다가 침수돼 가라앉아 조종 부사관이 사망했다.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물에 뜨는 장갑차'는 물에 뜨기는커녕 가라앉아 국민들의 마음도 가라앉히며 '허무'를 낳았다. ㅎㅎㅎ

엘시크레토와 주노 디아스



•엘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 / El Secreto De Sus Ojos (2009년)
•드라운: 주노 디아스
•오스카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세 작품의 공통점
하나, 중남미가 작품의 배경
둘, 독재정권 아래 불안한 국민의 삶을 모티브로 삼음.
셋, 국민은 정부를 탓하지 않음. 운명으로 받아들임.

고등학교 때,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본 적이 있다. ‘민주주의가 뭐야 도대체?’

• 민주주의[民主主義]:[명사] [정치]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

이해는 되는데 도무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선생님이 내 머리카락 길이를 지적했을 때, 흰 양말이 아닌 검은 양말을 신고 왔다고 선도부가 이름을 적어갈 때, 말대꾸를 한다는 이유로 체벌을 당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도 ‘민주주의’는 그런 모든 일과 무관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고교시절 공부에 흥미가 없었는지 모른다. ㅋㅋㅋ

무지몽매했던 그 시절의 나처럼 소설 속의 주인공들도 ‘민주주의’란 단어를 알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살아간다. 저주에 걸렸다고. 할아버지와 그 아들인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리고 자신이 살해하는 순간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저주가 아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가 3대를 몰살시킨 장본인이다(오스카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우리가 인식하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정치는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단 뜻이다.

엘 시크레토는 조금 다른 소재로 이야기를 풀지만 패론 독재정권 아래 아르헨티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강간-살해를 저지른 범죄자가 반정부군 소탕작전에 공을 세워 승승장구하는 모순적 상황. 범죄의 죄를 묻던 검사보는 오히려 판사의 미움을 사 살해당할 위기에까지 처한다. 간판만 ‘민주주의’ 라고 단 패론 정부는 법을 악용(惡用)해, 죄 있는 사람의 죄를 죄 없는 사람에게 묻고, 무고한 시민은 제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도피한다. 물론 영화는 이 과정에 ‘로맨스’란 양념을 쳐 일련의 과정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난 사회적 감수성이 민감한 편이 아니지만 요즘 이런 영화와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정의’, ‘법치’, ‘민주주의’ 와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떠올려본다. 거대 담론에 가까운 가치에 대해 재고해보게 된 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 때문이다. 지적장애인에게 윽박질러 거짓 진술을 받아내 구속한 경찰(시사매거진 2580-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편-),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사찰하고 나선 검찰, 대포폰 사건 등…

둔감한 나조차 느끼는 ‘조용한 변화’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으며,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를 2주 연속 예매순위 1위로 만든 원인일 테다. 꾹꾹 누르니 되레 더 관심이 많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아무튼 ‘공정한 사회’가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는 이명박 정권의 목표다. 청개천 복원을 불도저처럼 해냈던 것처럼 부정부패-비리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 문제도 좀 속 시원히 해결해주길 바란다. ㅋㅋ(MB 파이팅!!)

2010년 7월 19일 월요일

[조선인터뷰] 2년 7개월만에 청와대 떠나는 이동관 前홍보수석

기자 지망생으로서 강인선 기자는 나의 롤모델이다. 이동관 전 홍보수석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다시금 존경하게 된다.

[조선인터뷰] 2년 7개월만에 청와대 떠나는 이동관 前홍보수석
강인선 기자 insun@chosun.com


“대통령 옆에서 악역 떠맡아 욕먹어… 남자들 질투가 더 무섭더라”
“사람관계에도 중독성 대통령 하루 못 보니 내가 갈증 느낀 적 있어 위험하다고 생각”
“박근혜 의원 '강도론' 때는'이대론 안 될 것 같다' 대통령에 딱 한마디 하고 '사과요구' 행동 나서”
“홍보수석 역할은 말로 대통령 호위하는 검객 평소엔 스핀닥터 역할 필요할 땐 칼 들고 나서”

지난 16일 오후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53)은 청와대 뒷산이 바라보이는 삼청동의 카페에 먼저 와 있었다. 이날 이임식까지 마쳤으니 2년5개월의 청와대 생활이 막을 내린 직후였다.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뭐, 상시적인 쇄신 대상이었으니까 그동안 쇠심줄처럼 잘 버틴 거다. 건방진 얘기지만 올봄에 나갔으면 딱이었을 텐데…. 이런 꼴로 물러나면 안 되니까. 그러나 내가 제일 신날 때, 대통령 지지율이 50%일 때 그만두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이 전 수석은 처음엔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었다. "(물러난다고 하니까) 이제 겨우 가라앉은 사람들의 분노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마음을 바꿔 "오케이"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청와대에서 매일 기자들을 상대로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대통령을 대변했던 것이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개인 이동관'의 말을 할 수 있게 된 이날, 그는 할 말이 태산처럼 많은 것 같았다.

―이 전 수석을 인터뷰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어차피 솔직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말을 '마사지'하듯 사실과 다른 얘기만 할 것이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왜 이렇게 불신의 대상이 됐다고 생각하나(이 질문에 이 전 수석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 '이별연습'을 많이 해서 청와대를 떠나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던 유쾌한 얼굴에서 웃음도 잠시 사라졌다).

"예전에 마돈나 자서전을 보니 고교시절 처녀라는 사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고 하더라. 내가 이미지 메이킹을 잘못한 거다.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날 것 같고 뺀질뺀질하고 뭔가 계산된 거 같고. 그렇다고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다. 나는 신문사 시절부터 폼 잡는 거 좋아하고 궂은 일 하기 싫어했다. 그런 내가 악역을 했던 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내 나름의 사생관과 미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권도 여론도 이 전 수석의 역할에 비판적이었는데 대통령은 여론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이 전 수석을 그대로 썼다. 그것도 2년5개월 동안.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는 이번엔 "그걸 내가 대답하긴 좀 그렇다"고 망설였다. 그러더니 "꼭 얘기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을 공명(共鳴)하고 읽어내서 전달할 수 있었던 능력 아닐까. 하나 더 있다면 결기랄까, 충성심이랄까, 나름의 역할 인식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수석의 이야기는 거기서 '궁중암투'로 갔다. "그렇게 욕을 먹었던 것은 오로지 대통령 옆에 있다는 이유였다. 이해는 한다. 남자의 질투는 여자의 질투보다 무섭더라. 남자는 칼로 찌른다. 우리 DNA엔 궁중암투가 있는 것 같더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언제 그런 질투를 느꼈나.

"이를테면 6·2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선거관리 주무 책임자보다 내가 타깃이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는 이야기를 나도 건너서 듣는다. 좀 심하게 말하면 대통령에겐 차마 못하니까 그 욕을 나한테 한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가 대통령과 여의도 사이를 가로막았다는데 내가 어떻게 그걸 할 수 있겠나."

―그토록 이 전 수석을 신임하던 대통령이 이번엔 왜 청와대에서 내보내기로 한 것일까.

"나를 생각해주신 부분도 있고 또 주변에서 (대통령에게) 그런 권유를 많이 했다. 건방진 얘기지만 사람관계에도 중독현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못 본 적이 있는데 그럼 내가 갈증을 느낀 적이 있다. 아, 이건 나 스스로 생각해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공인으로 대통령을 모시는 데도 그렇더라."

―그렇다면 이 전 수석이 나간 후 대통령도 '갈증'을 느낄 텐데.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새로운 역할을 하는 거니까."

―그렇게 대통령의 '귀'를 잡고 있기 때문에 '실세'니 '왕수석'이니 하는 말이 나온 것 아닌가.

"실세란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사람인데 나는 기능적 참모였다. 그러나 맡은 일의 성격상 대통령과 교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매일 가서 물어볼 수는 없다. 나는 비교적 물어보지 않고 하는 편이었는데 대통령이 그 정도 재량은 주신 거다."

―그게 실세가 아니면 무엇이 실세인가?

"그렇게 보면 그렇다. 전에 '강도론' 나왔을 때 박근혜 의원(그는 '전 대표'가 아니라 '의원'이라고 했다)의 반응을 보고 대통령에게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적절히 하겠습니다'고 한마디 딱 하고 한 거다(지난 2월 세종시 논란 때 이 대통령이 "잘 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친다"고 하자, 박 전 대표가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강도로 돌변한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그러자 이 전 수석이 박 전 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홍보란 게 결국 모든 일에 걸리니까 적이 많았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이동관이 월권 한다'는 보고가 올라갔다. 그러나 대통령이 홍보 업무의 필요상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해줬다. 그래도 나는 인사나 이권엔 개입하지 않았다. 그걸 했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건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가. 실제로는 이 전 수석의 반대 때문에 어떤 자리에 가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물론 의견 개진은 했다. 기자였으니까 많이 듣고 많이 알고, 또 누군가의 속살을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엔 말했다. 대통령도 '그건 당신의 의무'라고 했다. 악의를 갖고 헐뜯은 게 아니다. 추천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연이 있는 사람을 추천하며 억지를 쓰지는 않았다."

이 전 수석은 '실세는 아니다'고 하면서도 무심코 "나 같은 실세는"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과의 특별하고도 돈독한 관계에 대한 암시는 계속 그의 말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대통령의 신뢰가 없었다면 나는 벌써 무너졌지. 벌써 암 걸렸겠지"라고도 했다.

―후임 홍보수석에게 해준 제일 중요한 충고가 뭐였나(이 전 수석은 "왜 이렇게 예상에 없는 질문을 하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중에 그가 준비해온 파일을 보니 아마도 이 인터뷰에서 그동안 했던 주요 발언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말로 대통령을 호위하는 검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생관을 갖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전 수석이 한 역할은 뉴스의 흐름을 바꿔 여론에 영향을 끼치는 '스핀 닥터(정치홍보전문가)'가 아니었나.

"물론 매일 검객은 아니었다. 보통 때는 스핀 닥터 역할을 하며 이슈 관리를 한다. 평소엔 회를 썰다가 박근혜 의원의 강도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독재자 발언 같은 일이 있을 때 (칼을 들고) 나서는 거다."

―이 전 수석은 기자 경험을 통해 아는 언론의 메커니즘을 이용해서 거꾸로 기자들이 제대로 일하지 못하게 했다는 비판도 있다.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특정 질문을 못하게 한다든지, 어떤 문제는 나중에 알려줄 테니 미리 취재하지 말라는 식으로.

"그건 심한 얘기다. 모든 기자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고 변명하진 않겠다. 어떨 땐 이걸 딱 쳐야 오른쪽으로 간다든지, 왼쪽으로 간다든지 하는 기능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게 내 존재 이유였다."

―청와대 있을 때 고소를 많이 해서 '고달(고소의 달인)'이란 별명까지 생겼다. 대통령 참모로서 그런 식으로 대응하는 방법밖에 없었나.

"물러나면서 다 취하했다. 그러니까 이번엔 '쇼달'이라고 하더라. 그간의 고소는 다 쇼였으니 '쇼의 달인'이라는 거다. 가만히 있으면 진짜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까 봐 그랬던 거다. 물론 약간의 분노도 있었다."

―정치권과 갈등이 많았는데, 요즘 국회를 어떻게 보나.

"요즘 정치는 배신과 음모와 모략의 정치다. 세종시 수정안 본회의 표결할 때 박근혜 의원이 반대토론 하는데, 찬성표를 던진 의원 105명 중 누구 하나 나서서 발언하지 않더라. 무슨 '용각산 국회'인가. 부부싸움을 해도 화해하려면 따질 건 따지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다음 재·보선에 출마할 계획이라던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대통령이 하라는 일을 할 거다. 내 입장에선 대통령의 성공이 중요하다. MB가 실패하면 신문사를 그만두고 MB의 '아바타'란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일한 나는 뭐가 되나. 만일 내가 할 일이 국회의원이라면 또 칼 들고 가서 할 거고, 폼 나는 자리 하라면 또 할 거다. 과거에 (청와대) 안의 것을 밖으로 전하는 소통은 못했지만 이젠 밖에 나가 민심을 알리는 소통창구가 되겠다. 마패 없는 암행어사가 돼서 리포트를 쓰든 전화를 드리든 할 거다."

이동관 前 홍보수석은…

2007년 말 대통령직 인수위 대변인을 시작으로 2년 7개월간 '이명박의 입' 역할을 해오다 최근 청와대 개편을 계기로 물러났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대처 능력이 뛰어나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왔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후 청와대 전면 물갈이 때도 잔류했고 이후 '왕수석' '이핵관(핵심관계자)' 등으로 불리며 '실세'로 통했다. 홍보수석 재임 중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과 다르게 전달했다는 이른바 '마사지' 논란을 겪었고 청와대 출입기자 수를 인위적으로 줄이려는 시도를 해 '신(新)언론통제'라는 비판도 받았다. 퇴임을 앞두고는 이 같은 비판을 의식, "나도 신성일·김진규 역을 하고 싶었지만 허장강·박노식의 역할이 필요했다"며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악역(惡役)을 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명박 캠프에 들어오기 전까지 동아일보에서 도쿄특파원,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낸 기자 출신이다. 신일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2010년 7월 16일 금요일

김미화를 위한 변명

KBS ‘9시 뉴스’에 KBS가 출현했다. ‘블랙리스트’란 말로 자사를 비방한 방송인 김미화의 글에 반박하기 위해서다. KBS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인데, 이 공공재는 소유주가 있는 사기업처럼 자기방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억울해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김미화는 일개 코미디언 아닌가. 또 블랙리스트가 있냐고 물었지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없으면 ‘없다’고 말하면 될 것을 ‘9시 뉴스’를 통해 방송한 것은 조금 비겁했다. 그런데 방송 후 대중의 비난은 ‘김미화’에게 쏠렸다. 공인인데 경솔했다는 게 죄명이다.

사건은 결국 ‘공인과 트위터’란 논란으로 접어들었다. KBS의 주장은 사회적 지위와 권위가 있는 공인이 인터넷 활동을 하는데 보다 무거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단 것이다. 특히 트위터는 ‘무한 알튀(RT)’라는 기술로 메시지가 무한 전파돼 파급효과가 크다. 이 논리를 대입하면, 공인인 김미화는 공인으로서 책임을 방기했고, 그로 인해 유언비어가 트위터를 통해 퍼져나감으로써 KBS는 앉은 자리에서 ‘핵폭탄’을 맞은 셈이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비약이 있다. 먼저 김미화는 공인이지만 전문가도 정치인도 아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코미디언이다. 대중이 그를 좋아하는 건 ‘전문자적’ 포스 때문이 아니라 나와 닮은 ‘비전문가’의 향수 때문이다. 또 트위터의 파급효과가 크다 한 들 방송에 비할 수 없다. 20~30대 사용자가 주계층을 이루는 트위터의 ‘글’이 전 국민이 시청하는 9시 뉴스와 비교될 수 없는 이유다.

KBS의 과잉 반응은 최근 KBS를 둔 다양한 의혹을 잠재우기 위한 무리수다. 다시 말해 ‘김미화 블랙리스트’ 사건을 본보기로 논란을 잠재우려했단 말이다. 김인규 KBS 사장 내정 때 불거진 청와대 ‘낙하산’ 의혹부터 시사 프로그램의 지나친 ‘정부 편향적 내용’은 줄곧 비판받아왔다. 또 지난해 폐지된 문화교양 프로그램도 사실 외압이 있었다는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의 발언 등도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는 발 없는 말을 키웠다. 김미화는 총대를 멘 것뿐이다. 반성을 해야 할 주체는 의심을 불러일으킨 KBS인데, 적반하장 격으로 KBS는 ‘김미화’를 고소하는 행동은 자충수에 가깝다.

김미화와 KBS의 싸움은 엉뚱하게 ‘트위터 규제론’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이미 선거운동에서 ‘트위터 활용 규제’를 위한 법 개정 논란이 한차례 있었다. 6․2 지방선거를 통해 정치권은 트위터의 파급력에 놀랐고, 이후 트위터가 ‘유언비어’ 양산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이다. 보수언론도 트위터가 ‘소통의 통로’가 아닌 ‘음란물의 통로’라는 기사를 실어 적절한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의 의도와 달리 사건은 트위터의 ‘위험성’과 ‘책임성’만 주목한 채 관련 법 제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은 가해자 김미화, 목격자 국민, 피해자 KBS로 정리되며 재판은 정치권이 맡는 모양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다. 공인도 국민의 일원으로 의무에 앞선 권리가 주어진다. 트위터는 마이크로 소셜 네트워킹으로 자리 잡으며 보다 넓고 활발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새로운 플랫폼이다. 막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부여하며, 어른처럼 행동하길 강요한다고 아이가 어른이 될 수 없다. 트위터도 마찬가지다. 건전한 인터넷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대화’가 먼저다. 소통 후에 규제해도 늦지 않다.

2010년 7월 9일 금요일

(폴리뉴스)박찬종, 전기통신기본법 남발을 멈춰라!

천안함 사태와 관련 인터넷 등에서 정부의 진상발표와 어긋나는 의견들에 대해서 수사기관이 전기통신기본법 제 47조 1항의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규정을 적용하여 사법처리하고 있는 사례가 갑자기 늘어나고 있다.

수사기관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정부발표와는 상반된 의견들을 위 조항위반으로 사법처리 하는 데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위 조항이 남용될 때는 국민의 기본권이 크게 침해될 위험이 있다.

2009년 1월 검찰이 필명 ‘미네르바’인 박대성 씨가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라는 등의 글을 인터넷상에 공표한 것에 대해서 위 조항 위반으로 기소하였으나, 그해 4월 20일 1심법원은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 이후 박 씨의 변호인은 위 조항이 위헌이라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그해 12월 10일 변론을 종결하고, 최종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왜 위 제 47조 1항이 위헌인가?
형법을 비롯하여 특정행위를 단죄하는 처벌법을 제정할 때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즉, 처벌의 대상인 행위의 구성요건이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위 법 47조 1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의 통신을 한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공익을 해할 목적이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이며, 공익의 범위와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본다.

형법과 각종 처벌법규에서 ‘공익’과 관련된 조항은 형법 제310조에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때’는 명예훼손죄의 위법성조각사유가 된다고 규정한 것이 유일하다. 위 조항에서 막연히 ‘공공을 이익을 위한 때’라고 규정하지 않고, ‘오로지’라는 공익의 범위에 대한 제한적 요건을 설정해놓고 있다.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에서 단순히 공익을 해할 목적이란 요건은 해석상 그 범위를 특정하기 쉽지 않아서 남용의 소지가 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경우에도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규정함으로서 처벌법을 제정할 때, 이른바 ‘과잉금지원칙’, ‘명확성의 원칙’, ‘비례의 원칙’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있다(헌법 제37조). 이러한 헌법의 취지에 비추어볼 때, 위 법 제47조 1항은 위헌임이 명백하다. 최근 천안함 사태와 관련하여 인터넷 등에서 제기되고 있는 의견들 중 정부의 진상발표와 어긋나는 것을 일률적으로 위 조항위반으로 사법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위헌의 논란이 있는 법률을 적용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하여 정부의 진상발표와 다른 의견들이 속출하고 있는 데에는 그동안 정부의 발표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신뢰를 상실한데서 비롯된 요인이 크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10. 7. 8.
박찬종 (올바른사람들 공동대표/폴리칼럼니스트)

2010년 6월 16일 수요일

(경향)미국 CNN이 본 ‘세계 월드컵 정치사'

“어떤 사람들은 축구가 삶과 죽음의 문제라고 말한다. 나는 그런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축구는 삶과 죽음의 문제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1981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는 세상을 떠나기 전 ‘축구라는 아름다운 경기의 중요성이 과소평가돼 있다’는 것을 이렇게 지적했다. 이는 축구팬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3S(Sports·Sex·Screen) 정책’이란 말이 있듯이 정치는 축구를 이용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아온 역사가 있다. 월드컵이 시작된 후 축구는 혁명의 동기가 되기도 하고,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평화를 받아들이게도 하고, 갈라졌던 세력을 뭉치게도 만들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은 세계사 이면에 어떤 기록을 남길까. 미국 CNN 방송은 최근 남아공 월드컵을 맞아 ‘세계 월드컵 정치사’를 소개했다.


무솔리니의 ‘맨인블랙’

◀ 1934년 이탈리아월드컵 공식 포스터

일 두체(베니토 무솔리니 별칭)는 축구를 정치에 ‘악용’한 대표적 인물이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를 1934년 제2회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하는 것부터 월드컵 운영 방식, 심판매수 등 국민들의 관심을 월드컵으로 돌리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무솔리니는 우승컵도 줄리메컵보다 6배 큰 ‘코파델두체’라는 우승컵을 별도로 만들었다. 이탈리아는 우승에 앞서 준결승에서 당시 유럽 축구 강호였던 오스트리아와 만나 2대 1로 승리했다.

오스트리아의 요세프 바이칸은 그 경기를 이렇게 기억한다. “이탈리아전에서는 심지어 심판들도 그들(이탈리아)을 위해 뛰었다. 나는 우리팀 선수를 향해 공을 패스했지만 심판이 앞서 공을 이탈리아 선수에게 밀어줬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치에 굴하지 않은 오스트리아 영웅

마티아스 진델라(오스트리아 선수)

30년대 오스트리아 축구 대표팀은 유럽 최고의 실력으로 ‘기적의 팀(wonderteam)’이라 불렸다. 3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나치 독일은 그해 3월 오스트리아를 강제 합병한다. 나치는 독일팀의 실력을 오스트리아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했다. 나치는 오스트리아 선수들을 영입했는데, 주장 마티아스 진델라는 이를 거부했다. 같은 해 4월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시합을 벌인다. 진델라는 “오스트리아가 이겨서는 안된다”는 나치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2대 0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첫번째 골이 터졌을 때 진델라는 오스트리아 관중 앞에 섰고, 두번째 골이 나왔을 때는 나치 관료들 앞에서 축하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진델라는 이듬해 자신의 아파트에서 연인과 함께 가스 유출사고로 서른 여섯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가 오스트리아 대표팀을 잃고 상실감에 자살했다는 소문과 함께 살해당했다는 음모설이 제기됐다.


독립위해 출전 포기한 알제리 선수들

축구는 알제리의 독립전쟁의 한 방법이었다. 1830년대부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은 알제리는 1954년부터 민족해방전선(FLN)을 중심으로 8년간 격렬한 독립전쟁을 벌였다. 전쟁 중이던 58년 스웨덴 월드컵을 맞아 프랑스는 알제리 선수들을 자국의 국가대표팀으로 차출하려 했다. 한편으론 알제리인들에게 명성과 부를 누릴 수 있는 하나의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알제리 선수들은 프랑스를 위해 뛰지 않기로 결정하고 튀니지에 있는 FLN 본부로 모였다. 그리고 체포 위험에도 불구하고 ‘불법’ 대표팀을 만든다. 프랑스 프로리그 생테티엔에서 뛰면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바 있는 라시드 마프루키는 알제리 불법 대표팀 합류에 대해 “주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선택으로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그는 “나는 나의 클럽을 버리고, 월드컵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조국의 독립과 견줄 만한 것인지를…”이라고 말했다.


축구전쟁

69년 중미의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70년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북중미 최종예선에서 벌인 경기는 말 그대로 전쟁이 됐다. 그해 6월15일 엘살바도르에서 열린 경기에서 원정 응원을 온 온두라스 국민들이 홈 관중들에게 몰매를 맞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온두라스에선 이를 계기로 엘살바도르인들을 겨냥한 무차별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엘살바도르는 세계인권위원회에 온두라스를 고발했고, 온두라스는 엘살바도르 상품 수입금지로 맞섰다. 8일 뒤 양국은 국교를 끊었다. 7월14일 엘살바도르의 온두라스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됐다. 미주기구(OAS)의 중재로 같은 달 29일 엘살바도르가 무조건 철수했지만 평화협정은 80년에, 국경 확정은 2006년에야 마무리됐다. 이 전쟁으로 5000여명이 희생됐다. 이 전쟁의 이면에는 양국의 영토확장을 둘러싼 국경문제가 있었다. 또 온두라스에서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이 경제적 실권을 쥐고 있었는데, 온두라스는 69년 농지개혁을 하면서 엘살바도르인들을 제외하고 추방했다.

두 국가의 군부는 축구 경기장에서의 폭력사태에 관한 소문을 선동하면서 고조된 상대 국가에 대한 반감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목숨 걸고 시합한 자이르 선수들

일룽가 음웨푸(자이르 선수)

74년 서독 월드컵 때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는 같은 조였던 유고슬라비아에 9대 0이라는 기록적인 골차로 대패했다. 그리고 브라질과의 경기. 3대 0으로 뒤져있던 상황에서 브라질이 프리킥 기회를 얻었다. 그 순간 자이르의 일룽가 음웨푸 선수는 축구 경기의 룰을 망각한 듯했다. 음웨푸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기 전 본인이 공을 먼저 차버렸다. 하지만 해프닝의 이면은 훨씬 어두운 것이었다. 음웨푸의 행동은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의 충성 부하들이 선수들에게 “만약 브라질에 3골차 이상으로 진다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협박을 했기 때문이었다. 음웨푸는 “우리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경기를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군부의 계략

아르헨티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군부는 78년 월드컵을 개최하기 2년 전에 권력을 잡았다. 정권 유지를 위한 선전 도구로 월드컵은 최적의 무기와도 같았다. 86년 영국 선데이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군부는 뇌물과 협박 등 갖은 수단을 동원해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만들어냈다. 본선 2라운드에 만난 페루와의 경기. 4강 진출을 위해 페루를 상대로 4골차 이상으로 승리해야 했다.

아르헨티나 군부 지도부는 페루 선수들의 라커룸에 찾아가 “남미가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6대 0으로 이겼다. 아르헨티나 군부는 곧 3만5000t의 밀을 페루의 리마로 보냈다. 또 페루 정부에 5000만달러의 ‘무이자 대출’을 해줬다.


이란의 축구 혁명

98년 프랑스 월드컵은 이란에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했다. 이란은 본선에서 79년 이슬람 혁명 이래 불편한 관계였던 미국과 한 조에 속했다. 정치적으로 양국은 긴장감이 맴돌았지만 경기장에서 양국은 친화력을 보여줬다. 선수들은 최대한 상대 선수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꽃과 선물을 주고받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이란의 이미지를 바꿔놓았다. 한편으로 이란 국내에서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란은 2대 1로 미국을 이겼고, 이란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때 젊은 여성들도 빠지지 않았는데, 남녀가 한자리에 섞이는 것이 금기시되는 이슬람 국가에서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란인 짐 무이르는 “그 일은 소년과 소녀들이 함께 섞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고, 사회적인 변화가 반영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평화를 위하여

아흐메트 다부토글루 터키 외무장관(앞줄 오른쪽)과 에두아르드 날반디안 아르메니아 외무장관(앞줄 왼쪽)이 지난해 10월10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국교수립 의정서를 교환하는 모습을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 하비에르 솔라나 전 유럽연합 외교정책 고위대표(뒷줄 오른쪽부터)가 지켜보고 있다. 취리히 | 로이터뉴시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아르메니아와 터키의 지역 예선전에서 양국의 지도자들이 근 1세기 만에 만났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에 의해 수십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이 학살당했던 역사가 무뎌지는 순간이었다. 압둘라 굴 터키 대통령은 2008년 자국에서 열린 첫 게임에 참석했고, 아르메니아 대통령은 이듬해 아르메니아에서 열린 양국 경기를 허용했다. 터키와 아르메니아는 지난해 10월 국교 수립 의정서와 관계 발전 의정서에 서명했다. 작가 조지 오웰은 “축구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말했지만 어떤 경기는 평화를 위한 길목에서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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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교수, "촛불의 힘이 투표참여로 확대된 게 지방선거 의미"

드라마틱한 6.2지방선거 이후 선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그중에서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가 눈에 띄어 실어본다.


[경향 6/16]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인터뷰

- 최근 학술대회에서 자유주의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왜 지금 자유주의입니까.

“‘이제는 자유주의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유주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게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분단국가 이후 자유민주주의가 새로운 국가의 공식 이념이 됐지만, 그 이념은 냉전 반공주의로 변질돼 권위주의나 군부독재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자유주의는 구호나 슬로건으로만 존재했습니다. 자유주의 전통이 뿌리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화가 먼저 됐습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기틀이 어느 정도 잡혔는데 민주화, 현대사를 생각하면서 자유주의를 성찰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고 봅니다.”

- 자유주의란 무엇입니까. 보수, 진보 등 여러 갈래의 이념 세력들이 여러 뜻으로 쓰고 있는데요.

“자유주의는 보편적 이념이기 때문에 범위가 넓습니다. 한국 정치를 발전시키려면 선별적으로 추려야 하는 작업이 필요한데요. 우선 자유주의가 인간 역사 발전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게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인간평등의 보편 사상, 즉 자연권 사상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두 번째 자유주의 원칙에는 국가 권력을 제대로 견제하는 가치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원칙은 3권 분립이라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나타납니다. 또 한국 현실에선 진보파들에게 정열을 식히는 해독제 역할을 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진보파들은) 민주주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결과 민주주의가 모두 이뤄낼 수 있다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현실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정치에 대한 이해 방법과 태도를 자유주의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 한국의 정치·사회 맥락에서 자유주의는 보수의 용어였습니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는 구분됩니다. 자유주의는 어떻게 정치권력을 제도화하고 인간의 자유·평등을 구현할 수 있느냐는 이론입니다. 로크, 몽테스키외 등은 자율적 시장경제를 지지·옹호한 적이 없어요.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동일하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자유주의는 평등사상입니다. 민주주의 평등사상의 기초는 정치적 평등이고, 1인1표의 대의제가 기초가 되는 건데요. 평등이라고 하는 기본 원리가 동일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하고 상통합니다.”

- 자유주의가 한국에서 하나의 보편 이념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한국 현실을 볼 때 자유주의는 진보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정치적 힘으로 조직·실천하느냐에 따라 사민주의 내용까지 포괄할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 그동안 보수파들이 자유주의 이념의 핵심 요소들, 즉 법의 지배, 법 앞의 평등, 인간 평등사상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자유주의는 정치적으로 이해 관계가 다른 세력을 관용하고, 공존을 강조했던 이념입니다. 이념이 다르다고 서로를 용인하지 않는 태도나 행동 양식들은 자유주의의 가치가 확산될 때 많이 완화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 최근 급진민주주의 등을 강조하는 진보 지식인들의 논의에 비판적 견해를 내셨는데요.

“정치를 ‘냉정한 열정’이라고도 말합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과도한 열정과 결합한 걸 두고 ‘정서적 급진주의’란 말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정부와 정당이 보수적으로 되면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걸 대의제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이상적 대안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의제 민주주의가 문제가 아닙니다. 대의제는 잘하면 됩니다.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는, 운동과 같은 급진적 방법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민주주의를 운영하고 평상시 실천하는 것과는 방법이 다릅니다. 민주주의는 이익 갈등과 결정에 이르는 설득과 타협이 필연적으로 전제되는 겁니다. 민중주의 이념으로 급진적으로 성취하려는 열정이 얼마나 민주주의 작동 원리와 잘 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6·2 지방선거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많은 사람들이 투표의 힘이 크다는 걸 느꼈을 겁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수백만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와 정부를 비판·성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투표의) 힘이 더 강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민주주의에서 투표만큼 정당성을 강하게 부여하는 게 없습니다. 그간 이명박 정부가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는 다수 국민의 힘에 선출된 정부이고, 위임받아 통치하는 것이다. 일부 과격분자 이야기한다고 수용할 수 없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 힘을 제약하고 견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민주주의 투표입니다. 투표 참여 없이 운동 참여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는 그래서 부족한 거죠. 이번 선거에서 촛불이라는 운동의 힘이 투표 참여의 에너지로 확대된 게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 여당 패배 원인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견제되지 않은 권력이 필연적으로 보여주었던 권력의 독선과 오만에 대한 투표자의 반응이었다고 봅니다. 정부 여당을 위해서도 지난 대선, 총선과 같은 일방적 승리는 좋은 것일 수 없습니다. 민주화를 경험한 많은 시민들에게 현 정부는 여러 측면에서 민주주의 규범과 원리를 존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대북정책 등 중대 이슈와 정부정책이 일방적이었습니다. 선거에서 승리한 다수당이라도 민주주의는 항상 시민들의 요구에 반응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공론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국민을 겸손하게 설득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최상층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폈고, 대북정책에서 평화와 공존이라는 보이지 않는 넓은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고, 전쟁 위협을 느낄 정도로 남북 문제를 악화시켰습니다. 정부 여당이 집권 이후 왜 짧은 시간에 국민을 실망시켰느냐는 문제는 민주화 이후 늘 되풀이된 패턴으로 보입니다. 한국 국가권력이 크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반대자들은 물론, 자신의 지지자들의 요구나 의사를 폭넓게 수용하지 않고서도 통치가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는 정치적 자원을 만들어주는 것이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선거 때 투표자들은 쉽게 소외되는 것이지요.”

- 선거 과정에서 민주대연합, 민주 대 반민주 논리에 동의하지 않으셨는데요.

“국가 권력이 강하기 때문에 견제하려면 모든 힘을 다 결합해야 한다고 하니까, 일종의 양당제적 모양새가 만들어졌죠. 이렇게 경쟁 틀이 잡히면 소수 정당, 소수 의사들이 대표될 수 없죠. 그래서 비판적이었던 겁니다. 한국 정치 경쟁 구조에서 견제와 균형을 만들려면 연합이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진 않아요. 다만 이기는 데 가치와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려면 소수 의사 대표가 제대로 되어야 하고요. 정책 차이를 빼고 무턱대고 연합, 연대를 추진하면 억압적 요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진보·군소정당에 일방적 후보 단일화 압력을 넣는 건 곤란하다고 봐요. 지방선거에 승리했다고 다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 민주당의 승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번 선거 결과는 과도한 정부 권력에 대한 중간평가이고, 권력에 대한 견제라고 봐야죠. 민주당이 대안이라 지지한 게 아니라 견제를 위해 소극적 지지를 한 거죠. 국가·정부가 권력을 남용하고, 투표로써 야당이 견제하게끔 하는 게 우리 선거 패턴입니다. 민주당이 다음 총선, 대선에서 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예요. 쇄신해야 합니다. 한나라당과 비슷한 정책을 갖고 가면 적극적으로 선택하기 힘듭니다.”

- 투표율이 높아졌지만 45% 정도가 투표를 안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당체제가 시민들의 적극적 선택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정당 체제가 희망을 주고, 요구를 대변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투표율은 한국민주주의의 현 위치를 보여주는 거죠. 기존 제도권 정당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말이죠.”

- 선거에서 드러난 건 ‘냉전 이념 불러내기’였던 것 같습니다. 마침 6·15 10주년이기도 한데요.

“정부가 선거 가까이 천안함 같은 이슈를 만들고 여론을 동원하는 스타일을 보여줬는데,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하던 걸 재현한거죠. 퇴행입니다. 지금 온세계가 평화를 지향하고 있는데,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 가능성이 운위된다는 건 곤란하죠. 세계 시대정신이 평화입니다. 남한이 평화 이니셔티브를 쥐고 다른 나라를 설득해도 시원치 않은 판입니다. 지금 다른 나라는 제발 한반도 평화가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하는데, 한국이 나서서 북한을 혼내줘야겠다고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보수 기득권층들이 너무 쉽게 통치하려 냉전 이념을 불러내요. 시대착오인 거죠. 탈냉전 시기에 맞게 평화적으로 안정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틀 안에서 북한을 다루는 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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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5일 화요일

밥 한 끼 사주고 싶은 너!


<샘터 6월호에 기고한 글>
밥 한 끼 사주고 싶은 너!

가을 전어와 쌍벽을 이루는 봄 도다리를 먹어봤는가. 도다리는 광어와 비슷하게 생긴 생선이다. 광어보다 크기도 작아 회로 먹을 양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맛은 좋다. 도다리 한 점을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리면 쫄깃함․ 담백함이 전해져 온다. 도다리 회 한 접시에 고추장과 배, 쑥갓, 미나리 등을 넣고 물을 조금 부으면 포항 대표음식인 ‘물회’가 된다.

4월 초 나는 도다리 같이 알찬 맛을 지닌 한 기업을 취재하기 위해 포항을 방문했었다. 내가 방문한 회사는 직원이 170명 정도 되는 중소기업이었다. 그곳은 합금철을 만드는 회서였다. 생산과정을 보기 위해 공장에 들렀다. 공장엔 전기로 네 대가 가동되고 있었고 그 안엔 망간, 코크스 등 광물이 불에 활활 타고 있었다. 고로에서 생산된 쇳물은 그 온도가 1500℃나 됐다. 4층 높이에서도 수증기의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런데 자세히 아래를 살펴보니 쇳물이 흐르는 통로 옆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장비를 꼼꼼히 착용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였다. ‘얼마나 뜨거울까’란 생각이 들자 괜스레 마음이 먹먹해졌다.

공장 방문을 마친 뒤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죽도시장 안의 한 횟집이었다. 내가 “아까 뜨거워서 혼났어요”라고 엄살을 부리자 한 직원이 손을 내밀었다. 검붉게 달아오른 퉁퉁 부은 손이었다. “철강 족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손이 다 이래요. 매일 뜨거운 수증기에 노출되고 금속 독이 올라 이렇게 징그럽게 변해요”란 말과 함께.

포항을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 투박한 인부들의 손이 떠올랐다. 땀과 수고를 머금은 그 손은 오늘도 힘차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봄엔 내가 그들에게 풍미가 좋은 도다리 한 접시로 밥 한 끼 사주고 싶다. “힘내세요!”

-2010년 5월 중소기업 심팩에이엔씨(SIMPAC A&C) 방문 후-

2010년 6월 4일 금요일

“낭만은 없다. 밥벌이는 현실이다.” -장명국(張明國)내일신문 사장

“낭만은 없다. 밥벌이는 현실이다.” -장명국(張明國)내일신문 사장

‘밥벌이의 지겨움’ 익숙한 문구다. 소설가 김훈은 에세이에서 밥벌이로 개인의 삶이 구조조정으로 해체되고 ‘개혁’이란 이름으로 파편화됨을 염려했다. 김훈만큼 밥벌이의 어려움이에 관심 많은 이가 있다. 바로 장명국 내일신문 사장이다. 장명국 사장은 노동경제학 전문가다. 노동법에 대해 그만큼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밥벌이=노동’이라며 일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물론 그가 주장하는 노동의 목적인 개인의 영욕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밥 한 공기에 고개 숙여야 하는 정도의 비참함을 면피하는 정도랄까.

올해 63세인 장 사장의 얼굴은 ‘노동운동가’라고 하기엔 어딘지 곱다. 남자에게 곱다는 표현이 어색한가. 노동전문가치곤 독기가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모든 일은 순리대로를 외치는 너털한 말투에 기자도 따라 웃게 된다. 상대를 배려하고 도와주는 것, 곧 우리 삶이 그만큼 풍족해지는 길이라는 그. 내공이 장난 아니다. ‘허허실실虛虛實實’ 장 사장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이다. 밥벌이에 대해 일각연이 있는 장명국 사장과 인터뷰를 시작한다.


1. 밥벌이의 어려움!

장명국 사장은 바쁨 없는 바쁜 일상을 보낸다. 사장이라고 잰 체하는 것도 없다. “내가 마케팅은 좀 잘해”라며 빙그레 웃는 그. 광고영업을 다녀오는 길이란다. 자신을 ‘신문팔이’로 지칭하며 월급 안 받는 사장 노릇은 밥벌이의 어려움 그 자체라고 한다. 원래 소주 반잔이 주량이었는데 기업인, 공무원 등이 폭탄주를 좋아해 자신의 주량도 늘었다고 한다. 지금도 비즈니스를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동안의 비결을 묻자 장 사장은 “건강관리를 열심히 해. 규칙적으로 살지.” 매일 5시 반에 일어나 7시 전에 출근한단다. 회사에선 제일 먼저 지난 밤 뉴스를 확인하고 1면에 무엇을 실을지 논의하는 편집국장회의에 참여한다고 한다. 편집국 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마케팅 회의가 이어진다. 광고 영업이 주요 내용으로 신문사 운영의 중요한 업무라고 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회의 후 가끔 조찬약속도 있다. 오늘이 그런 경우였는데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달렸다고 한다.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일 안했어. 놀았어!”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는 그. 밥벌이는 어렵지만 부지런히 일관성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다. “흔들림 없이 꾸준히 일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래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지. 맘먹으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그의 의지는 현장에서도 유명하다. 과거 YTN사장으로 임용돼 적자에 허덕이는 YTN을 3개월 만에 원상 복귀시켰다. 정부는 구조조정을 통해 직원의 50%를 해고하겠다는 강수를 뒀고, 그는 직원 해고 대신 임금삭감이란 비책을 냈다. 간부 50%, 부장급70%, 차장급 60%, 일반직원 50%. 경비 59% 삭감 등 내부 경비 절감을 단행했다. 노사가 단합해 상생을 이뤄낸 좋은 사례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난 공수부대 출신이에요. ‘원 샷 원 킬’이 내 전법이지. 사실 1년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3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서 나도 놀랬어. 그 바람에 사장자리를 8개월 만에 박차고 나왔지.” 세상살이가 그렇듯 돈 버는 일도 쉽지 않다. 하지만 꾸준히 궤도를 따라가다 보면 답이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2. 낭만이란 없다.

“경기고를 나왔지. 서울대는 따 놓은 당상이었고 학비 걱정도 없었어. 대학 때 처음 마르크스 경제를 배웠어. 당시 한국 경제 상황은 최악이었어. 1960년 1인당 국민소득이 79불, 당시 베트남이 1000불. 우린 진짜 최빈국이었지”

66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낭만 따윈 없었다.”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된다는 것, 실업자의 길로 접어든다는 생각이 만연한 때.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밥벌이’에 나섰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대학생들은 마음 한편에 빚을 졌다고 한다. 편안한 삶을 누리는 대신 열심히 공부해 가난한 조국을 구출해야 한다는 사명감 말이다. 그런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노동경제학을 배우기 위해 코넬 대학으로 유학을 준비하던 중, 데모에 휘말려 감옥살이를 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을 교부했는데 일이 그렇게 커질 줄 몰랐어. 데모가 나고 주동자가 붙잡혀서 나도 따라 잡혀 들어갔지.”

감옥살이를 한 계기로 노동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됐단다. 특히 어려운 노동경제학을 쉽게 말하는 재능에 강의도 맡게 됐다. 강의를 하는데 수업을 듣던 학생이 미채불임금에 관련한 질문을 했고, 답변을 하기 위해 노동법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노동법 관련 책이 한자로 돼 있어 한글로 써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약 100만부가 팔렸다. 이후 손가락을 잘린 사람, 다리 불구자 등 산업재해를 받은 사람이 산업재해법 관련 질문을 하러 왔다. 그래서 산업재해 관련 연구했다. 이런 연유로 노동법과 구체적 실무까지 꿰고 있어 변호사를 찾지 않는다고 한다. 노동전문가로써 걸어온 길은 그의 의지도 있었지만 의지와 환경이 함께 그를 이끈 것이기도 하다.


3.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노년의 꿈이 궁금했다. 꿈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외국신문사를 인수하는 것, 두 번째는 귀농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신문과 농업은 둘다 ‘사양 산업’이다. 장 사장은 “괜찮다. 맘만 먹으면 모든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외국 신문사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 그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지는 모두 유대인 회사입니다. 미국 내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고 숨은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선 언론사를 소유하는 게 지름길이지요.” 국내 정치, 경제가 국제 정세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에 외부 동향을 살피고 정보를 얻는 일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외국 신문사를 인수하기 위한 방안도 이미 구상해뒀단다. 내일신문사처럼 공모주를 모집하는 방법이 바로 그것.

“우리 직원들에게 투자하라고 할 것입니다. 투자금은 배당으로 돌려줄 겁니다. 우리 직원뿐 아니라 교민, 외국인 투자자 등도 다양하게 참여시킬 생각입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참여하여 함께 하고 싶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현재 생산량의 1.8배 정도 수확할 수 있다 자신하는 그. 장 사장의 아버지는 농학박사였다고 한다. “FTA 협정에서 가장 민감한 부문은 농업이었습니다. 쌀농사는 수출을 할 수 있어요.” 그는 협동농장을 만들어 농사짓는 즐거움을 함께 느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사할린, 베트남에도 수출하여 우리 쌀의 우수함을 알리고 싶단다.

식탁문화가 바뀌고 있고, 신문 산업의 종말을 예고하는 목소리는 많다. 하지만 장 사장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힘차게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가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좋아하니깐. 자신이 좋아하는 일, 그리고 노동을 통해 스스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삶 그자체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에게 한 마디 격려를 부탁하자, “저는 20대가 가장 똑똑하다 생각합니다.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 비난하는 이들도 있지만 정치만 없고 권력만 난무하는 정치판이 실질적인 문제”라고 일갈했다. “한 길을 파세요. 10년 정도 한 분야를 꾸준히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보면 밥을 못 먹을 수 있습니다. 밥을 못 먹으면 거지가 되죠. 그러면 눈치를 보게 됩니다. 비극이죠. 재밌는 일을 찾으세요. 밥도 먹고 즐거운 일을 찾아서”라고 덧붙였다.

2010년 6월 2일 수요일

박쥐-모던 걸이라!

-태주(김옥빈)를 통해 보는 한국여성의 변화-
태주는 하녀다. 병든 남편을 수발하고,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그저 말없이 일할뿐이다. 태주의 집에는 정기적으로 손님들이 방문한다. 식탁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마작을 즐기지만 태주는 그저 남편의 핫팩을 데우며, 잔심부름만 한다. 그래서 그녀는 하녀같다.
그런 그녀는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집밖을 나와 달린다. 그녀가 무작정 뛰는 길의 끝에 어렴풋이 아파트같은 건물이 보인다. 낡고 구닥다리 같은 그녀의 집은 검은 얼굴로 촌스러운 한복을 차려입은 그녀와 닮은 구석이 많다. 내달리던 그 길에서 태주는 상현과 마주친다. 상현의 다정한 손길은 그녀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태주는 시어머니에게 봉사활동을 가겠다고 한다. 단 한복집이 문닫는 일요일만 자유를 얻은 그녀는 상현과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상현과의 '섹스'는 그녀를 해방시키며, 태주에 대한 상현의 애정도 커간다.
태주는 이제 마작게임에 참여한다. 조심스럽게 참여하며 그녀는 하녀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존재감을 회복해나간다. 신부라는 상현의 직업은 한국사회가 전근대에서 근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공로가 컸음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독교와 함께 들어온 자본주의와 근대과학은 한국사회의 '서구화'를 가속화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던 것이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태주의 마작게임 참여는 '근대화된 여성'을 상징한다. 물론 성적 자기결정권을 거머쥔 것도 여성의 권리신장을 뜻할지도...
태주는 상현의 질투심을 이용해 무능력한 남편을 죽이는데 성공한다. 거짓말로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곤 그에게 강우가 그렇게 했다며 상현을 자극했던 것이다. 그녀는 점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성이 되어가며, 상현을 이용하는 치밀한 계획성마저 보인다. 태주는 남성을 이용하여 성취감을 맛보는 '모던 걸'로 변신한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이 들통나고 상현의 손에 죽임당한 그녀는 그로 인해 다시 살아난다. 뱀파이어로....뱀파이어로 재탄생한 태주는 이제 과거의 태주가 아니다. 그녀의 옷차림은 화사하고 얼굴은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살던 그 집은 흰 페인트로 덧칠된다. 우중충한 과거의 기억들은 흰 페인트로 사라지고, 이제 그녀는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는다. CCTV를 거실에 설치하며 그녀의 집은, 현대적인 공간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 하나 있다. 죽은 강우의 어머니다. 그녀는 반식물인간 상태로 그녀를 응시한다. 태주는 시어머니를 죽이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하얀 페인트로 덧칠된 세련된 그 공간에 한복을 고이 입은 시어머니의 응시는 아들을 잃은 노모의 한이자, 한국인의 보편정서 "한"을 표현하는 것 같다.
태주에게 남자는 의미가 없다. 그녀에게 남성은 하나의 물건이다. 상현을 온몸으로 꽉 껴안고 사악하고 웃어보이는 태주의 얼굴, 살아있는 먹이가 더 맛있다는 태주의 말, 피를 더 효과적으로 먹기 위해 시체를 빨래처럼 메달아 놓은 그녀의 행동은 현대 여성을 상징한다. 욕망 아니 충동에 따라 스스럼없이 행동하고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 그녀다.
태주의 변신은 한국사회의 변동(전근대-근대-현대)과 함께 변화해온 여성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러나 여성이 제 아무리 권리신장을 하고 모던 걸로 거듭나도 그녀를 끊임없이 주시하는 시어머니의 응시는 여성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변하지 않는 고정관념일테다. 한마디로 섹스 앤더 시티를 따라 된장녀로 변신해 커피 빈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획득한다고 해도 정체된 한국적 가치관들은 여성의 가치를 재는 척도이며 가부장적인 남성의 가치관은 한국 여성을 구속한다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태주'라는 인물을 통해 어쩌면 한국여성의 변화와 그 한계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허경영의 무례한 복음

무례한 복음, 이택광( 그중에서 가장 잼나는 것)

허경영 후보의 증상은 확실히 독보적이다.


그가 대선 기간 동안 내세운 공약들은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상당히 '파시즘적인 것'이다.
-박근혜와 결혼할 것이라느니, 아이큐가 430이라느니, 우주와 교신한다느니 하는 가십성 주장들이 훨씬 부각되고 있지만,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월급을 주지 않으며, 지방자치단체장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겠다는 공약들은 국회를 해산하고 민주주의를 불허하겠다는 것과 유사한 의미다.


물론 누구도 허경영 후보가 이런 공약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내놨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허경영 후보는 그냥 자신의 관점에서 유권자의 귀를 솔깃하게 할 수 있는 파격적인 '한방'을 찾다보니 이런 공약을 내세웠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허경영 후부의 허우맹랑함이 "나만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다른 후보들의 주장이 얼마나 공허할 수 있는지를 역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허경영 후부가 반시장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모순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상징질서에 내재해 있다.


우리가 목격하는 허경영 현상은 역설적으로 지금 현재 유지되고 있는 사회적 상징계의 불변성을 드러낸다.


(2008년 1월 21일 서울 남부지검,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허경영 대한 사전 구속영장 청구/12월 24일 대법원, 허경영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선고 확정)

(2009-12-10 20:00 작성)

종말! 그대는 믿는가?

영화 <2012>는 과연 종말론에 관한 영화인가?

영화를 보던 중 문득 종말론 영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현재를 재구성해 낸 것처럼 보였다. 무슨 말이냐...2012가 보여주는 세계의 모습이 미국발 금융위기와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혹은 혹사당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는 말이다.

먼저, 지구의 핵이 뜨거워져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그 시발점이 미국 서부라는 점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화산폭발이 시작되는 것처럼 금융위기의 시초도 미국이다. 특히 신용이 낮은 서브 프라임 계층의 디폴트 선언으로 금융위기가 시작된 것처럼 평범한 어느 날 불행은 찾아온다. 물론 그 위기의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다만, 위기를 실제로 겪는 일반인들만 모를 뿐이다.

이렇게 시작된 불행은 예상보다 더욱 파급효과가 크고,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파괴력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놀라 도망치고, TV앞에 서서 정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만 죽음이 문턱에 다가오기 전까지 정부는 '괜찮다'고 말한다. CNN, 즉 언론과 함께

위기상황을 이미 통보받은 거부와 세계 정치인들은 재난을 피해 대피한다. 그곳은 바로 중국이다. 재밌지 않는가. G8국가 정상들과 거부들이 위기를 피해 중국으로 모여든다는 것. 어떤 면에서 금융위기를 피해 핫머니가 중국으로 몰려드는 현상, 미국과 중국이 G2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 유럽연합과 중국, 아프리카와 중국 한국까지 중국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생존하고 싶다면 중국으로 대피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인들도 21세기 노아의 방주에 올라타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만들지만 그 우주선을 만드는 자본은 러시아, 미국, 유럽 등 세계 국가들의 투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저 값싼 노동력을 가진 공장일 뿐이다. 중국을 지렛대로 세계는 또 한번 생존이란 구원을 얻는 셈이다. 어쩌면 금융위기로 피해를 입인 세계의 거부들과 투자가들이 자산회복을 위한 마지막 투자지로 중국을 눈여겨 본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나 궁금한 것은 선택받은 자들(?), 재난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세상이다. 방주에서 내린 노아의 가족들이 다시 인류를 가꾸고 경작하며 생존한 것처럼 살아남은 그들의 삶, 신인류의 모습은 어떨가라는 궁금증 말이다.

(2009-12-02 14:53 작성)

2010년 5월 26일 수요일

정운찬 총리의 '東問西答'

지식인으로서의 정운찬은 '훌륭'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정운찬은 '글쎄'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다.

시리즈 1) 정운찬 총리는 25일 서울 중랑구의 자율형 공립고인 원묵고를 찾아 특강후 학생들과 질의응답을 하던 중 '학창시절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묻는 학생의 질문에 대해 다독(多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질문과 동떨어진 엉뚱한 말을 했다.

“문자로 인쇄된 신문을 보는 것이 인터넷보다 훨씬 유익하다”고 주장하며 “인터넷 보급이 한국 문화의 수준을 상당히 떨어뜨리고 있다”며 인터넷 사용을 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리즈 2) 지난 13일 고 한주호 준위의 가족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해 "잘못된 약속조차도 막 지키려는 여자"라고 발언해 파장이 크게 일고 있다.

시리즈 3) 고인이 된 민주당 이용삼 의원의 빈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4선 의원을 초선으로 부르고, 독신인 이 의원을 두고 '자제들이 어린데' 라는 말을 해서 주위를 당황하게 했다.

시리즈 4) 4대강과 관련해 경남 양산의 물금취수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4대강 사업이 완료되면 우리 강들은 큰 어항이 된다"라며 "어항이 커야 물고기들이 깨끗한 물에서 자랄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을 자초했다.

시리즈 5)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 과정에서는 인간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일본군 '731부대'를 '항일 독립군 부대'로 잘못 말하기도 했다.

2010년 5월 17일 월요일

이준구 "웬 마녀사냥? 촛불 불씨 안 꺼졌다"

이준구 "웬 마녀사냥? 촛불 불씨 안 꺼졌다"
MB와 <조선일보>의 '촛불 협공' 질타 2010-05-17 16:19:12

웬 마녀사냥?
2008년 5월 촛불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을 때 TV 카메라 앞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이 대통령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불과 며칠 전 미국 방문에서 돌아올 때의 그 환한 표정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의아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는 국민들에게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해 그런 사태가 발생하게 만들었음을 사과했다. 한 달 뒤의 특별기자회견에서도 또 다시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꼼꼼히 헤아리지 못한 데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랬던 이 대통령이 며칠 전 갑자기 촛불시위와 관련이 있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2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반성해야 할 사람이 갑자기 바뀌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동안 과연 어떤 객관적인 진실규명 작업이 있었고, 그 작업의 결론은 어떻게 났다는 말인가? 내 기억으로 그런 진실규명 작업이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다만 정부와 정부를 두둔하는 측의 일방적인 판단만으로 사과해야 할 주체가 엉겁결에 뒤집혀졌을 뿐이다.

묘한 것은 그 발언이 나오기 며칠 전 한 보수 일간지가 촛불시위에 대해 사흘 동안 엄청난 분량의 기사를 쏟아냈다는 점이다. 아무리 중요한 이슈라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분량의 기사를 쏟아내는 것은 분명 부담이 될 텐데, 아랑곳하지 않고 도배하듯 몇 면을 아낌없이 퍼부은 것을 보면 작심하고 그 기사를 썼던 것이 분명하다. 그 기사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왜곡보도 시비가 붙은 것을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론을 휘저어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 기사가 나온 지 바로 뒤에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다는 것이 이심전심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보수진영 일각에서 촛불시위의 역사를 바꿔 쓰자는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짧은 시각에서 볼 때 역사는 힘을 가진 자에 의해 씌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보수진영의 뜻대로 촛불시위의 역사를 바꿔 쓰는 데 성공할지 모른다. 그러나 긴 시각에서 보면 오직 진실만이 역사로 남게 되어 있다. 보수진영의 성급한 역사 바꿔 쓰기는 후일 오히려 웃음거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시시비비를 정확하게 가리려면 촛불시위의 근본적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촛불시위의 근본적 원인은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에 있었다. 이미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새 정부는 국민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돌출행동을 일삼아 국민의 불만을 사고 있었다. 광우병의 위험에 대한 우려는 이 불만을 폭발적인 차원으로 비화하게 만드는 기폭제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 자명한 진실을 왜곡하려 해서는 안 된다.

촛불시위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우리 정부의 일방적인 양보와 검역주권 포기에 대한 국민의 분노였다. 거의 모든 나라가 광우병 유발 가능성이 큰 나이 3년 이상 소의 고기와 특수위험부위(SRM)의 수입을 불허하고 있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인심을 쓰듯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모두 수입하겠다고 나섰으니 국민의 분노가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국민을 팔아 미국에 인심을 썼다고 분노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그 당시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에 약간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그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심리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어날 확률이 아주 작은 사건에 대해 그 발생 확률을 상당히 부풀려서 인식하는 경향을 갖는다. 더군다나 비자발적으로 노출된 위험성과 그 성격이 불명확한 위험성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이 한층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의 졸속 협상으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광우병 위협에 노출된 데다가 몇 십 년이 지나야 발병 여부가 판명된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두려움이 상식 수준 이상으로 증폭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 말한 보수 일간지나 대통령의 발언에 따르면, 순진한 사람들이 몇몇 불순분자의 선동에 속아 촛불을 들고 서울광장으로 모인 것이다. 말하자면 거기 모인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나쁜 사람 아니면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는 바보 같은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정치인이든 언론이든 국민을 그런 우둔한 무리로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런 잘못된 현실 인식에서 국민을 순치의 대상으로 보는 비민주적인 태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서 촛불시위에 대한 역사 바꿔 쓰기의 시도가 나왔느냐는 점이다. 최근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것은 매우 그럴듯한 추측이 될 수 있다. 높아진 지지율을 발판으로 삼아 2008년 5월의 굴욕에 대한 대반전을 시도해 보자는 충동에 휩싸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높은 지지율에서 나온 자신감이 무리수를 두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종전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높은 지지율에 고무되어 저지른 무리수가 위기의 씨앗을 뿌리는 결과를 빚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처럼 지지율이 높은 수준으로 올라간 상태에서는 내려가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겸손한 태도로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 지지율의 추락을 막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잘못된 정보로 사람들을 속여 놓고 반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매우 모욕적으로 들린다. 자신의 일방적 평가에 기초해 상대방에게 사과나 반성을 요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불평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촛불시위에 관한 사항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라고 지시한 것은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그때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를 빠짐없이 기록해 두고두고 망신을 주자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사람이 정말로 망신을 당하게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새삼스럽게 2년 전의 일을 끄집어내 반성 운운하는 것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특히 몇몇 지식인과 의료인이 광우병의 위험성을 과장해 사람들을 선동했다고 일방적으로 단정하고 이들의 말과 글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라고 지시한 것은 현대판 ‘마녀사냥’을 연상케 하는 일이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 엄밀하게 따져 보지도 않고 무조건 죄를 지은 것으로 몰고 가는 것은 중세 암흑시대의 마녀사냥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따지고 보면 촛불시위로 인해 우리가 얻은 것이 분명히 있다. 쇠고기 재협상은 없다고 버티던 정부의 등을 떠밀어 결국 나이 3년 이상 소의 고기와 특별위험부위의 수입을 불허하기로 합의한 것은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촛불시위와 같은 집단적 반발이 없었다 해도 정부가 자발적으로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했을까? 제기할 필요조차 없는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촛불시위는 분명 우리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 촛불시위가 마치 일부 불순분자의 선동에 의해 발생한 불상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통령이 2008년 5월의 대국민 사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아직도 그 사과는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실수로 사과한 것이니 무효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지식인과 의료인들 중 반성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불평은 대통령의 생각이 후자, 즉 그때의 사과는 무효라는 쪽으로 잡혀가고 있다는 암시다. 아직도 촛불시위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상대방의 반성을 요구할 이유가 전혀 없기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당시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한 사과가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종전의 국정운영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촛불시위 이후의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그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소통의 부재가 여전히 이 정부의 트레이드마크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4대강사업에 대한 반대를 오히려 속도전으로 맞받아치는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에서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단적인 예를 찾을 수 있다. 최소한 반수 이상의 국민이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대통령 자신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4대강사업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 어떤 것이든 간에 일단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닐까? 이 상황에서 홍보 부족 타령이나 하는 것은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일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대통령이 높아진 지지율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국정에 임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자신감이 현재의 국정운영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이어진다면 이만저만 위험한 일이 아니다. 높은 지지율의 신기루에 가려 있을 뿐이지, 지금 우리 사회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부작용으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느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불안하기만 하다.

나는 촛불시위 같은 불행한 일이 또 다시 일어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불씨는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당장 4대강 문제만 하더라도 정부의 무모한 속도전은 머지않아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게 될 것이 뻔하다.

사실 지금은 4대강사업의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몰라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 진실이 정확하게 알려지면서 공사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외침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갈 것이다. 뜬금없는 마녀사냥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4대강 사업이라는 폭탄의 뇌관을 한시라도 빨리 제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출처] : 뷰스앤뉴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3178

2010년 5월 15일 토요일

로마사인가. 현대사인가....

최근 미드 한편이 인기다. 스파르타쿠스가 바로 그 화제의 드라마. 첫 장면부터 피의 향연이다. 미니 콜로세움 안의 검투사들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며 승리를 위해서 목도 자르고, 몸통을 두 조각 내기도 한다. 그런 장면은 늘상 모자이크 처리가 됐었는데 실제로 보니 "윽~~"이란 비명이 절로 나온다. 폭력뿐만 아니라 섹스장면까지 적나라게 등장한다. 폭력성과 선정성이란 흥행의 두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에 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다고 단언한다면 그대는 하수다.

이 드라마가 인기있는 이유는 섹스와 폭력이란 화려한 볼거리 이면에 흐르고 있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섹스와 폭력은 들러리에 불과하다. 바티아투스는 명예욕과 금전욕을 가진 인물로 검투자를 양상한다. 그는 스파르타쿠스를 이용해 대중의 인기를 얻고, 관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한다. 정상적인 수단과 비정상적인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 말이다. 정치를 향한 바티아투스와 그의 아내의 야망은 많은 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잡는다. 스파르타쿠스의 아내, 바르카(검투사), 지방정치인 등. 게다가 군관인 남편을 둔 일리티이아는 그들의 꾐에 빠져 살인까지 저지르고 만다. 욕심이 욕심을 낳고 욕심이 죄를 낳는 일그러진 순간들이 드라마의 내용의 긴장감을 높인다. 스파르타쿠스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실제 그가 주인공처럼 보이지 않는다.

로마사가 지금까지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실제 그들의 삶이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외관상으로 차이는 크겠지만 인간의 삶이란 근원적인 부분에서 우리는 그들로부터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의 삶을 통해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 미국사를 곧잘 로마사에 빗대지 않는가. 시즌1(blood and sand)에서 보여준 로마인의 모습이 날 것, 즉 폭력적이며 성적이며 권력을 얻기 위해 질주하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를 상징했다면 시즌2, 시즌3에선 보다 정제된 로마인의 머리 싸움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즌1이 개막전이었다면 시즌2와 앞으로 펼쳐질 내용이 본게임일 테다. 무척 기대되는 드라마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끄적임이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