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6일 수요일

정운찬 총리의 '東問西答'

지식인으로서의 정운찬은 '훌륭'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정운찬은 '글쎄'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다.

시리즈 1) 정운찬 총리는 25일 서울 중랑구의 자율형 공립고인 원묵고를 찾아 특강후 학생들과 질의응답을 하던 중 '학창시절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묻는 학생의 질문에 대해 다독(多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질문과 동떨어진 엉뚱한 말을 했다.

“문자로 인쇄된 신문을 보는 것이 인터넷보다 훨씬 유익하다”고 주장하며 “인터넷 보급이 한국 문화의 수준을 상당히 떨어뜨리고 있다”며 인터넷 사용을 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리즈 2) 지난 13일 고 한주호 준위의 가족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해 "잘못된 약속조차도 막 지키려는 여자"라고 발언해 파장이 크게 일고 있다.

시리즈 3) 고인이 된 민주당 이용삼 의원의 빈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4선 의원을 초선으로 부르고, 독신인 이 의원을 두고 '자제들이 어린데' 라는 말을 해서 주위를 당황하게 했다.

시리즈 4) 4대강과 관련해 경남 양산의 물금취수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4대강 사업이 완료되면 우리 강들은 큰 어항이 된다"라며 "어항이 커야 물고기들이 깨끗한 물에서 자랄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을 자초했다.

시리즈 5)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 과정에서는 인간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일본군 '731부대'를 '항일 독립군 부대'로 잘못 말하기도 했다.

2010년 5월 17일 월요일

이준구 "웬 마녀사냥? 촛불 불씨 안 꺼졌다"

이준구 "웬 마녀사냥? 촛불 불씨 안 꺼졌다"
MB와 <조선일보>의 '촛불 협공' 질타 2010-05-17 16:19:12

웬 마녀사냥?
2008년 5월 촛불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을 때 TV 카메라 앞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이 대통령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불과 며칠 전 미국 방문에서 돌아올 때의 그 환한 표정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의아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는 국민들에게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해 그런 사태가 발생하게 만들었음을 사과했다. 한 달 뒤의 특별기자회견에서도 또 다시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꼼꼼히 헤아리지 못한 데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랬던 이 대통령이 며칠 전 갑자기 촛불시위와 관련이 있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2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반성해야 할 사람이 갑자기 바뀌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동안 과연 어떤 객관적인 진실규명 작업이 있었고, 그 작업의 결론은 어떻게 났다는 말인가? 내 기억으로 그런 진실규명 작업이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다만 정부와 정부를 두둔하는 측의 일방적인 판단만으로 사과해야 할 주체가 엉겁결에 뒤집혀졌을 뿐이다.

묘한 것은 그 발언이 나오기 며칠 전 한 보수 일간지가 촛불시위에 대해 사흘 동안 엄청난 분량의 기사를 쏟아냈다는 점이다. 아무리 중요한 이슈라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분량의 기사를 쏟아내는 것은 분명 부담이 될 텐데, 아랑곳하지 않고 도배하듯 몇 면을 아낌없이 퍼부은 것을 보면 작심하고 그 기사를 썼던 것이 분명하다. 그 기사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왜곡보도 시비가 붙은 것을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론을 휘저어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 기사가 나온 지 바로 뒤에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다는 것이 이심전심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보수진영 일각에서 촛불시위의 역사를 바꿔 쓰자는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짧은 시각에서 볼 때 역사는 힘을 가진 자에 의해 씌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보수진영의 뜻대로 촛불시위의 역사를 바꿔 쓰는 데 성공할지 모른다. 그러나 긴 시각에서 보면 오직 진실만이 역사로 남게 되어 있다. 보수진영의 성급한 역사 바꿔 쓰기는 후일 오히려 웃음거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시시비비를 정확하게 가리려면 촛불시위의 근본적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촛불시위의 근본적 원인은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에 있었다. 이미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새 정부는 국민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돌출행동을 일삼아 국민의 불만을 사고 있었다. 광우병의 위험에 대한 우려는 이 불만을 폭발적인 차원으로 비화하게 만드는 기폭제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 자명한 진실을 왜곡하려 해서는 안 된다.

촛불시위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우리 정부의 일방적인 양보와 검역주권 포기에 대한 국민의 분노였다. 거의 모든 나라가 광우병 유발 가능성이 큰 나이 3년 이상 소의 고기와 특수위험부위(SRM)의 수입을 불허하고 있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인심을 쓰듯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모두 수입하겠다고 나섰으니 국민의 분노가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국민을 팔아 미국에 인심을 썼다고 분노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그 당시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에 약간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그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심리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어날 확률이 아주 작은 사건에 대해 그 발생 확률을 상당히 부풀려서 인식하는 경향을 갖는다. 더군다나 비자발적으로 노출된 위험성과 그 성격이 불명확한 위험성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이 한층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의 졸속 협상으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광우병 위협에 노출된 데다가 몇 십 년이 지나야 발병 여부가 판명된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두려움이 상식 수준 이상으로 증폭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 말한 보수 일간지나 대통령의 발언에 따르면, 순진한 사람들이 몇몇 불순분자의 선동에 속아 촛불을 들고 서울광장으로 모인 것이다. 말하자면 거기 모인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나쁜 사람 아니면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는 바보 같은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정치인이든 언론이든 국민을 그런 우둔한 무리로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런 잘못된 현실 인식에서 국민을 순치의 대상으로 보는 비민주적인 태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서 촛불시위에 대한 역사 바꿔 쓰기의 시도가 나왔느냐는 점이다. 최근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것은 매우 그럴듯한 추측이 될 수 있다. 높아진 지지율을 발판으로 삼아 2008년 5월의 굴욕에 대한 대반전을 시도해 보자는 충동에 휩싸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높은 지지율에서 나온 자신감이 무리수를 두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종전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높은 지지율에 고무되어 저지른 무리수가 위기의 씨앗을 뿌리는 결과를 빚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처럼 지지율이 높은 수준으로 올라간 상태에서는 내려가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겸손한 태도로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 지지율의 추락을 막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잘못된 정보로 사람들을 속여 놓고 반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매우 모욕적으로 들린다. 자신의 일방적 평가에 기초해 상대방에게 사과나 반성을 요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불평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촛불시위에 관한 사항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라고 지시한 것은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그때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를 빠짐없이 기록해 두고두고 망신을 주자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사람이 정말로 망신을 당하게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새삼스럽게 2년 전의 일을 끄집어내 반성 운운하는 것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특히 몇몇 지식인과 의료인이 광우병의 위험성을 과장해 사람들을 선동했다고 일방적으로 단정하고 이들의 말과 글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라고 지시한 것은 현대판 ‘마녀사냥’을 연상케 하는 일이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 엄밀하게 따져 보지도 않고 무조건 죄를 지은 것으로 몰고 가는 것은 중세 암흑시대의 마녀사냥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따지고 보면 촛불시위로 인해 우리가 얻은 것이 분명히 있다. 쇠고기 재협상은 없다고 버티던 정부의 등을 떠밀어 결국 나이 3년 이상 소의 고기와 특별위험부위의 수입을 불허하기로 합의한 것은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촛불시위와 같은 집단적 반발이 없었다 해도 정부가 자발적으로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했을까? 제기할 필요조차 없는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촛불시위는 분명 우리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 촛불시위가 마치 일부 불순분자의 선동에 의해 발생한 불상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통령이 2008년 5월의 대국민 사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아직도 그 사과는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실수로 사과한 것이니 무효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지식인과 의료인들 중 반성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불평은 대통령의 생각이 후자, 즉 그때의 사과는 무효라는 쪽으로 잡혀가고 있다는 암시다. 아직도 촛불시위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상대방의 반성을 요구할 이유가 전혀 없기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당시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한 사과가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종전의 국정운영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촛불시위 이후의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그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소통의 부재가 여전히 이 정부의 트레이드마크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4대강사업에 대한 반대를 오히려 속도전으로 맞받아치는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에서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단적인 예를 찾을 수 있다. 최소한 반수 이상의 국민이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대통령 자신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4대강사업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 어떤 것이든 간에 일단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닐까? 이 상황에서 홍보 부족 타령이나 하는 것은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일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대통령이 높아진 지지율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국정에 임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자신감이 현재의 국정운영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이어진다면 이만저만 위험한 일이 아니다. 높은 지지율의 신기루에 가려 있을 뿐이지, 지금 우리 사회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부작용으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느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불안하기만 하다.

나는 촛불시위 같은 불행한 일이 또 다시 일어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불씨는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당장 4대강 문제만 하더라도 정부의 무모한 속도전은 머지않아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게 될 것이 뻔하다.

사실 지금은 4대강사업의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몰라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 진실이 정확하게 알려지면서 공사의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외침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갈 것이다. 뜬금없는 마녀사냥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4대강 사업이라는 폭탄의 뇌관을 한시라도 빨리 제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출처] : 뷰스앤뉴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3178

2010년 5월 15일 토요일

로마사인가. 현대사인가....

최근 미드 한편이 인기다. 스파르타쿠스가 바로 그 화제의 드라마. 첫 장면부터 피의 향연이다. 미니 콜로세움 안의 검투사들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며 승리를 위해서 목도 자르고, 몸통을 두 조각 내기도 한다. 그런 장면은 늘상 모자이크 처리가 됐었는데 실제로 보니 "윽~~"이란 비명이 절로 나온다. 폭력뿐만 아니라 섹스장면까지 적나라게 등장한다. 폭력성과 선정성이란 흥행의 두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에 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다고 단언한다면 그대는 하수다.

이 드라마가 인기있는 이유는 섹스와 폭력이란 화려한 볼거리 이면에 흐르고 있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섹스와 폭력은 들러리에 불과하다. 바티아투스는 명예욕과 금전욕을 가진 인물로 검투자를 양상한다. 그는 스파르타쿠스를 이용해 대중의 인기를 얻고, 관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한다. 정상적인 수단과 비정상적인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 말이다. 정치를 향한 바티아투스와 그의 아내의 야망은 많은 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잡는다. 스파르타쿠스의 아내, 바르카(검투사), 지방정치인 등. 게다가 군관인 남편을 둔 일리티이아는 그들의 꾐에 빠져 살인까지 저지르고 만다. 욕심이 욕심을 낳고 욕심이 죄를 낳는 일그러진 순간들이 드라마의 내용의 긴장감을 높인다. 스파르타쿠스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실제 그가 주인공처럼 보이지 않는다.

로마사가 지금까지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실제 그들의 삶이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외관상으로 차이는 크겠지만 인간의 삶이란 근원적인 부분에서 우리는 그들로부터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의 삶을 통해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 미국사를 곧잘 로마사에 빗대지 않는가. 시즌1(blood and sand)에서 보여준 로마인의 모습이 날 것, 즉 폭력적이며 성적이며 권력을 얻기 위해 질주하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를 상징했다면 시즌2, 시즌3에선 보다 정제된 로마인의 머리 싸움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즌1이 개막전이었다면 시즌2와 앞으로 펼쳐질 내용이 본게임일 테다. 무척 기대되는 드라마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끄적임이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