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4일 금요일

“낭만은 없다. 밥벌이는 현실이다.” -장명국(張明國)내일신문 사장

“낭만은 없다. 밥벌이는 현실이다.” -장명국(張明國)내일신문 사장

‘밥벌이의 지겨움’ 익숙한 문구다. 소설가 김훈은 에세이에서 밥벌이로 개인의 삶이 구조조정으로 해체되고 ‘개혁’이란 이름으로 파편화됨을 염려했다. 김훈만큼 밥벌이의 어려움이에 관심 많은 이가 있다. 바로 장명국 내일신문 사장이다. 장명국 사장은 노동경제학 전문가다. 노동법에 대해 그만큼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밥벌이=노동’이라며 일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물론 그가 주장하는 노동의 목적인 개인의 영욕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밥 한 공기에 고개 숙여야 하는 정도의 비참함을 면피하는 정도랄까.

올해 63세인 장 사장의 얼굴은 ‘노동운동가’라고 하기엔 어딘지 곱다. 남자에게 곱다는 표현이 어색한가. 노동전문가치곤 독기가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모든 일은 순리대로를 외치는 너털한 말투에 기자도 따라 웃게 된다. 상대를 배려하고 도와주는 것, 곧 우리 삶이 그만큼 풍족해지는 길이라는 그. 내공이 장난 아니다. ‘허허실실虛虛實實’ 장 사장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이다. 밥벌이에 대해 일각연이 있는 장명국 사장과 인터뷰를 시작한다.


1. 밥벌이의 어려움!

장명국 사장은 바쁨 없는 바쁜 일상을 보낸다. 사장이라고 잰 체하는 것도 없다. “내가 마케팅은 좀 잘해”라며 빙그레 웃는 그. 광고영업을 다녀오는 길이란다. 자신을 ‘신문팔이’로 지칭하며 월급 안 받는 사장 노릇은 밥벌이의 어려움 그 자체라고 한다. 원래 소주 반잔이 주량이었는데 기업인, 공무원 등이 폭탄주를 좋아해 자신의 주량도 늘었다고 한다. 지금도 비즈니스를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한다.

동안의 비결을 묻자 장 사장은 “건강관리를 열심히 해. 규칙적으로 살지.” 매일 5시 반에 일어나 7시 전에 출근한단다. 회사에선 제일 먼저 지난 밤 뉴스를 확인하고 1면에 무엇을 실을지 논의하는 편집국장회의에 참여한다고 한다. 편집국 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마케팅 회의가 이어진다. 광고 영업이 주요 내용으로 신문사 운영의 중요한 업무라고 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회의 후 가끔 조찬약속도 있다. 오늘이 그런 경우였는데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달렸다고 한다.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일 안했어. 놀았어!”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는 그. 밥벌이는 어렵지만 부지런히 일관성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다. “흔들림 없이 꾸준히 일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래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지. 맘먹으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그의 의지는 현장에서도 유명하다. 과거 YTN사장으로 임용돼 적자에 허덕이는 YTN을 3개월 만에 원상 복귀시켰다. 정부는 구조조정을 통해 직원의 50%를 해고하겠다는 강수를 뒀고, 그는 직원 해고 대신 임금삭감이란 비책을 냈다. 간부 50%, 부장급70%, 차장급 60%, 일반직원 50%. 경비 59% 삭감 등 내부 경비 절감을 단행했다. 노사가 단합해 상생을 이뤄낸 좋은 사례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난 공수부대 출신이에요. ‘원 샷 원 킬’이 내 전법이지. 사실 1년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3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서 나도 놀랬어. 그 바람에 사장자리를 8개월 만에 박차고 나왔지.” 세상살이가 그렇듯 돈 버는 일도 쉽지 않다. 하지만 꾸준히 궤도를 따라가다 보면 답이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2. 낭만이란 없다.

“경기고를 나왔지. 서울대는 따 놓은 당상이었고 학비 걱정도 없었어. 대학 때 처음 마르크스 경제를 배웠어. 당시 한국 경제 상황은 최악이었어. 1960년 1인당 국민소득이 79불, 당시 베트남이 1000불. 우린 진짜 최빈국이었지”

66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한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낭만 따윈 없었다.”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된다는 것, 실업자의 길로 접어든다는 생각이 만연한 때.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밥벌이’에 나섰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대학생들은 마음 한편에 빚을 졌다고 한다. 편안한 삶을 누리는 대신 열심히 공부해 가난한 조국을 구출해야 한다는 사명감 말이다. 그런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노동경제학을 배우기 위해 코넬 대학으로 유학을 준비하던 중, 데모에 휘말려 감옥살이를 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을 교부했는데 일이 그렇게 커질 줄 몰랐어. 데모가 나고 주동자가 붙잡혀서 나도 따라 잡혀 들어갔지.”

감옥살이를 한 계기로 노동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됐단다. 특히 어려운 노동경제학을 쉽게 말하는 재능에 강의도 맡게 됐다. 강의를 하는데 수업을 듣던 학생이 미채불임금에 관련한 질문을 했고, 답변을 하기 위해 노동법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노동법 관련 책이 한자로 돼 있어 한글로 써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약 100만부가 팔렸다. 이후 손가락을 잘린 사람, 다리 불구자 등 산업재해를 받은 사람이 산업재해법 관련 질문을 하러 왔다. 그래서 산업재해 관련 연구했다. 이런 연유로 노동법과 구체적 실무까지 꿰고 있어 변호사를 찾지 않는다고 한다. 노동전문가로써 걸어온 길은 그의 의지도 있었지만 의지와 환경이 함께 그를 이끈 것이기도 하다.


3.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노년의 꿈이 궁금했다. 꿈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외국신문사를 인수하는 것, 두 번째는 귀농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신문과 농업은 둘다 ‘사양 산업’이다. 장 사장은 “괜찮다. 맘만 먹으면 모든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외국 신문사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 그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지는 모두 유대인 회사입니다. 미국 내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고 숨은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선 언론사를 소유하는 게 지름길이지요.” 국내 정치, 경제가 국제 정세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에 외부 동향을 살피고 정보를 얻는 일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외국 신문사를 인수하기 위한 방안도 이미 구상해뒀단다. 내일신문사처럼 공모주를 모집하는 방법이 바로 그것.

“우리 직원들에게 투자하라고 할 것입니다. 투자금은 배당으로 돌려줄 겁니다. 우리 직원뿐 아니라 교민, 외국인 투자자 등도 다양하게 참여시킬 생각입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참여하여 함께 하고 싶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현재 생산량의 1.8배 정도 수확할 수 있다 자신하는 그. 장 사장의 아버지는 농학박사였다고 한다. “FTA 협정에서 가장 민감한 부문은 농업이었습니다. 쌀농사는 수출을 할 수 있어요.” 그는 협동농장을 만들어 농사짓는 즐거움을 함께 느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사할린, 베트남에도 수출하여 우리 쌀의 우수함을 알리고 싶단다.

식탁문화가 바뀌고 있고, 신문 산업의 종말을 예고하는 목소리는 많다. 하지만 장 사장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힘차게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가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좋아하니깐. 자신이 좋아하는 일, 그리고 노동을 통해 스스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삶 그자체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에게 한 마디 격려를 부탁하자, “저는 20대가 가장 똑똑하다 생각합니다.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 비난하는 이들도 있지만 정치만 없고 권력만 난무하는 정치판이 실질적인 문제”라고 일갈했다. “한 길을 파세요. 10년 정도 한 분야를 꾸준히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보면 밥을 못 먹을 수 있습니다. 밥을 못 먹으면 거지가 되죠. 그러면 눈치를 보게 됩니다. 비극이죠. 재밌는 일을 찾으세요. 밥도 먹고 즐거운 일을 찾아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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