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일 수요일

박쥐-모던 걸이라!

-태주(김옥빈)를 통해 보는 한국여성의 변화-
태주는 하녀다. 병든 남편을 수발하고,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그저 말없이 일할뿐이다. 태주의 집에는 정기적으로 손님들이 방문한다. 식탁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마작을 즐기지만 태주는 그저 남편의 핫팩을 데우며, 잔심부름만 한다. 그래서 그녀는 하녀같다.
그런 그녀는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집밖을 나와 달린다. 그녀가 무작정 뛰는 길의 끝에 어렴풋이 아파트같은 건물이 보인다. 낡고 구닥다리 같은 그녀의 집은 검은 얼굴로 촌스러운 한복을 차려입은 그녀와 닮은 구석이 많다. 내달리던 그 길에서 태주는 상현과 마주친다. 상현의 다정한 손길은 그녀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태주는 시어머니에게 봉사활동을 가겠다고 한다. 단 한복집이 문닫는 일요일만 자유를 얻은 그녀는 상현과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상현과의 '섹스'는 그녀를 해방시키며, 태주에 대한 상현의 애정도 커간다.
태주는 이제 마작게임에 참여한다. 조심스럽게 참여하며 그녀는 하녀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존재감을 회복해나간다. 신부라는 상현의 직업은 한국사회가 전근대에서 근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공로가 컸음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독교와 함께 들어온 자본주의와 근대과학은 한국사회의 '서구화'를 가속화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던 것이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태주의 마작게임 참여는 '근대화된 여성'을 상징한다. 물론 성적 자기결정권을 거머쥔 것도 여성의 권리신장을 뜻할지도...
태주는 상현의 질투심을 이용해 무능력한 남편을 죽이는데 성공한다. 거짓말로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곤 그에게 강우가 그렇게 했다며 상현을 자극했던 것이다. 그녀는 점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성이 되어가며, 상현을 이용하는 치밀한 계획성마저 보인다. 태주는 남성을 이용하여 성취감을 맛보는 '모던 걸'로 변신한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이 들통나고 상현의 손에 죽임당한 그녀는 그로 인해 다시 살아난다. 뱀파이어로....뱀파이어로 재탄생한 태주는 이제 과거의 태주가 아니다. 그녀의 옷차림은 화사하고 얼굴은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살던 그 집은 흰 페인트로 덧칠된다. 우중충한 과거의 기억들은 흰 페인트로 사라지고, 이제 그녀는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는다. CCTV를 거실에 설치하며 그녀의 집은, 현대적인 공간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 하나 있다. 죽은 강우의 어머니다. 그녀는 반식물인간 상태로 그녀를 응시한다. 태주는 시어머니를 죽이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하얀 페인트로 덧칠된 세련된 그 공간에 한복을 고이 입은 시어머니의 응시는 아들을 잃은 노모의 한이자, 한국인의 보편정서 "한"을 표현하는 것 같다.
태주에게 남자는 의미가 없다. 그녀에게 남성은 하나의 물건이다. 상현을 온몸으로 꽉 껴안고 사악하고 웃어보이는 태주의 얼굴, 살아있는 먹이가 더 맛있다는 태주의 말, 피를 더 효과적으로 먹기 위해 시체를 빨래처럼 메달아 놓은 그녀의 행동은 현대 여성을 상징한다. 욕망 아니 충동에 따라 스스럼없이 행동하고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 그녀다.
태주의 변신은 한국사회의 변동(전근대-근대-현대)과 함께 변화해온 여성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러나 여성이 제 아무리 권리신장을 하고 모던 걸로 거듭나도 그녀를 끊임없이 주시하는 시어머니의 응시는 여성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변하지 않는 고정관념일테다. 한마디로 섹스 앤더 시티를 따라 된장녀로 변신해 커피 빈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획득한다고 해도 정체된 한국적 가치관들은 여성의 가치를 재는 척도이며 가부장적인 남성의 가치관은 한국 여성을 구속한다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태주'라는 인물을 통해 어쩌면 한국여성의 변화와 그 한계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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