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엘시크레토와 주노 디아스



•엘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 / El Secreto De Sus Ojos (2009년)
•드라운: 주노 디아스
•오스카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세 작품의 공통점
하나, 중남미가 작품의 배경
둘, 독재정권 아래 불안한 국민의 삶을 모티브로 삼음.
셋, 국민은 정부를 탓하지 않음. 운명으로 받아들임.

고등학교 때,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본 적이 있다. ‘민주주의가 뭐야 도대체?’

• 민주주의[民主主義]:[명사] [정치]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

이해는 되는데 도무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선생님이 내 머리카락 길이를 지적했을 때, 흰 양말이 아닌 검은 양말을 신고 왔다고 선도부가 이름을 적어갈 때, 말대꾸를 한다는 이유로 체벌을 당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도 ‘민주주의’는 그런 모든 일과 무관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고교시절 공부에 흥미가 없었는지 모른다. ㅋㅋㅋ

무지몽매했던 그 시절의 나처럼 소설 속의 주인공들도 ‘민주주의’란 단어를 알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살아간다. 저주에 걸렸다고. 할아버지와 그 아들인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리고 자신이 살해하는 순간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저주가 아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가 3대를 몰살시킨 장본인이다(오스카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우리가 인식하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정치는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단 뜻이다.

엘 시크레토는 조금 다른 소재로 이야기를 풀지만 패론 독재정권 아래 아르헨티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강간-살해를 저지른 범죄자가 반정부군 소탕작전에 공을 세워 승승장구하는 모순적 상황. 범죄의 죄를 묻던 검사보는 오히려 판사의 미움을 사 살해당할 위기에까지 처한다. 간판만 ‘민주주의’ 라고 단 패론 정부는 법을 악용(惡用)해, 죄 있는 사람의 죄를 죄 없는 사람에게 묻고, 무고한 시민은 제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도피한다. 물론 영화는 이 과정에 ‘로맨스’란 양념을 쳐 일련의 과정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난 사회적 감수성이 민감한 편이 아니지만 요즘 이런 영화와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정의’, ‘법치’, ‘민주주의’ 와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떠올려본다. 거대 담론에 가까운 가치에 대해 재고해보게 된 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 때문이다. 지적장애인에게 윽박질러 거짓 진술을 받아내 구속한 경찰(시사매거진 2580-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편-),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민간인까지 사찰하고 나선 검찰, 대포폰 사건 등…

둔감한 나조차 느끼는 ‘조용한 변화’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으며,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를 2주 연속 예매순위 1위로 만든 원인일 테다. 꾹꾹 누르니 되레 더 관심이 많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아무튼 ‘공정한 사회’가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는 이명박 정권의 목표다. 청개천 복원을 불도저처럼 해냈던 것처럼 부정부패-비리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 문제도 좀 속 시원히 해결해주길 바란다. ㅋㅋ(MB 파이팅!!)

댓글 없음:

댓글 쓰기